휴일 아침,
차 한잔을 놓고 제라늄의 꽃송이을 보며,
분홍빛의 향기에 취해 깊은 평온과 행복을 느낍니다.
어제 산책길에는 따뜻한 날씨 탓으로 땀에 흠뻑 젖었습니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지금,
다시 올해의 일들을 정리해 봅니다.
그중 지난 2월 18일 교수회의에서 퇴임을 앞두고 한 인사말이 생각나 여기에 옮겨 둡니다.
지식과 사랑은 나눠 가질수록 더 풍요해집니다.
의학의 길을 인도하신 스승님들과 선배님들, 후학들에게 깊은 감사와 존경을 드립니다.
또한 경황없고 바쁘신 중에도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신 학장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1960년대 시골에는 흙과 지푸라기 밖에 없었습니다.
14살에 대구로 유학을 오게 되었는데 모든 것이 낯설었고 어려웠으며 무엇보다 제대로 학업을 마치려면 먼저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84년 12월 21일, Lake Charles, Louisiana에서 Maritimje Overseas Corporation 소속의 M/V Pacific Hunter에서 10개월 간 근무를 하고 하선하여 새벽에 Houston 공항으로 드라이브를 하는데, 왼쪽에 걸프만의 붉은 여명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마도 새벽에 광안대교를 지나면 유사한 경험을 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날 LA까지 날아가면서 하루 동안에 Texas의 가을과 Rocky Mountains의 폭설과 California의 봄을 모두 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 월급이 1,200 달러였는데 지금 가치로 약 3,600만원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년 동안 입시를 준비를 해서 1987년 본교 의예과에 입학했습니다.
일일이 다 감사를 드릴 수는 없지만 화학을 가르치셨던 이능주 교수님, 물리학의 김수길 교수님, 물리화학의 황인철 교수님, 생리학의 박양생 교수님, 박사논문을 지도해주셨던 분자의학 최병길 교수님, 저의 멘토였던 외과의 이충한 교수님, 이승도 교수님, 내과의 이재우 교수님, 정만홍 교수님, 산부인과의 김동휘 교수님, 소아과의 정윤주 교수님, 정현기 교수님, 박재선 교수님, 안과의 김신동 교수님, 이비인후과의 이강대 교수님의 깊은 사랑과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시드니나 나폴리를 포함해서 항해와 여행으로 65개국 정도를 다녔지만, 송도만큼 깨끗하고 안전하며 접근성이 뛰어난 바다와 숲을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저녁에는 장군산을 2시간 정도 산책합니다.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시인 Don Herold는 ‘내가 다시 산다면 멍청한 짓도 더하고 실수도 더 많이 해볼 것’이라는 글을 남겼는데, 60여년이 지난 지금, 이제 다시 산다는 것은 단지 생각이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왔다고 생각합니다.
변덕스런 나일강처럼, 급변하는 내외 정세와 의대 정원 사태로 무거운 책무에 묵묵히 과로하시는 교수님들께 깊은 존경과 연민을 느낍니다. 조속히 당면한 문제들이 해결되어서 모두 건승하시고 가내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바쁘신 중에도 이러한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고맙습니다.
250218.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가내 평안하시길 빕니다.
고맙습니다.